“오로지 그리스도교적 실천만이, 즉 십자가에서 죽은 그가 살았던 것처럼 사는 것만이 그리스도교적이다. … 오늘날에도 그런 삶은 가능하며, 특정인들을 위해서는 필요하기까지 하다: 진정한 그리스도교, 근원적인 그리스도교는 어느 시대에나 가능할 것이다. … 신앙이 아니라 행동이, 무엇보다도 많은-것을-행하지-않음, 다른 식의 존재가 말이다.”(AC 39 : KGW VI 3, 209)
“니체는 예수를, 원한 감정을 넘어선 자유와 초탈의 복음, 복음주의적 평등, 사랑하는 삶이라는 복음, 복음의 실천을 통한 내면의 구원을 설교하는 존재이자 이런 복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존재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런 예수의 복음만이 진정한 기쁜 소식이며, 이런 예수가 진정한 구세주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에서 예수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교성을 제시하는 존재이며, 역사상 유일했던 그리스도교인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이런 예수상이 교회와 사제 집단에 의해 전혀 다른 구세주 유형으로 왜곡된다. 복음적 평등 권리 대신에 단 하나의 신과 단 하나의 신의 아들이라는 것, 사랑을 통한 구원 대신에 신앙을 통한 구원, 불멸에 대한 믿음, 부활과 심판에 대한 종말론적 교리 등이 구세주 유형에 도입된다. 더군다나 교회라는 것은 예수가 진정 원치 않았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 창시자인 예수가 전혀 원하지 않았던 것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교성은 상실되어버리고, 신의 죽음은 바로 이런 그리스도교성의 상실에 기인한 것이다. 니체는 이런 사건의 주모자로 사제 집단을 지목한다. 사제 집단이 권력 추구 성향으로 인해 구세주 유형을 왜곡하고 교회라는 조직을 건설한 것이다. 사제들은 그들 자신이 가치를 설정하는 권력의 주체이고자 한다. 따라서 신에 대한 복종을 권고하면서 사실은 자신들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다. <안티크리스트>에서 비로소 표명된 이런 입장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이미 선취하고 있는 것이다.”
_ 백승영,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책세상, 2005, 269~2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