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협동은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단 말인가? 이 물음은 다윈 자신에게도 매우 곤혹스러운 난제였다.(Darwin, 1859) 왜냐하면 자연 선택이 기본적으로 ‘개체(유기체) 수준’에서 작용한다고 주장하는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인다면, 자기 자신의 적합도(fitness)를 훼손하면서까지 다른 개체와 협동하는 듯 보이는 생명의 또 다른 모습은 분명히 설명을 필요로 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협동의 진화에 관한 물음이 다윈 이후로 진화생물학의 중심에 자리 잡아 왔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만한 것이 못된다.(Cronin, 1991; Segerstrale, 2000) 다윈은 이 대목에서 도덕성 또는 이타성은 개체가 아닌 집단을 위한 것이라고 대답했다.(Darwin, 1859) 하지만 이런 집단 선택(group selection) 이론은 좋은 대답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이타적 개체로만 가득한 집단이라도 이기적 개체가 하나라도 있으면 그 집단은 곧 붕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 이후 100년이 지난 1960년대까지 집단 선택 이론은 대세를 이루었다. 하지만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집단 선택 이론에 결정적인 반론을 펼치며 다윈이 남겨 둔 퍼즐 조각들을 매우 인상적으로 짜 맞추었다. 그에 따르면, 자연 선택은 개체나 집단보다는 오히려 유전자의 수준에서 작용하며 동물의 협동 행동들은 유전자가 자신의 복사본을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한 전략으로서 진화했다.(Dawkins, 1976) 그는 동물의 이타적 행동이 외견상 이타적일 뿐 유전자의 시각으로는 되레 이기적이라고 주장하며, 인간을 “유전자의 생존 기계이며 운반자”라고 규정한다. 이렇게 우리의 시선을 유전자의 눈높이에 고정하면 상대방을 돕는 행동은 물론,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배우자 간의 갈등, 짝짓기 행동 등과 같이 그동안 사회과학적 설명으로만 이해되었던 현상들이 새롭게 재해석된다.”

“우리는 생존 기계다. 즉, 유전자라는 이기적 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 운반자다.”(Dawkins, 1976: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