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나치는 취업과 사회적 안정을 목마르게 찾으면서 승진이나 주변의 인정 같은 사소한 실리에 밝았던 소시민이었다. 이들은 대세를 거스르지 않고 말썽 없이 처신하는 게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저울질했고, 국가가 적으로 지목한 공산주의자와 유대인을 옹호함으로써 그 자신이 공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국민이 알아서 순응하는 이런 국면이야말로 나치를 비롯한 모든 전체주의 국가가 반겨 마지않을 상황이다.

“폭군은 폭정이라는 시커먼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몇 사람의 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실제의 저항을 걱정할 뿐이다. 공동체가 잠에서 깨어나 자신들의 도덕적 습관을 인식하게 되는 일종의 허용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나치는 미리 계산해야 했다. 국가 위기 상황이나 냉전의 경우에는 허용 한계가 더 늘어났고, 전쟁의 경우에는 허용 한계가 훨씬 더 늘어났다. 하지만 폭군은 반드시 허용 한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되었다. 만약 그의 계산이 사람들의 기질을 크게 넘어서는 정도가 되면 ‘봉기’에 직면하게 된다.”

히틀러가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집권한 1933년부터 유대인 가스 학살이 시작된 1943년에 이르기까지, 제3제국은 평범한 독일인의 도덕적 의지와 저항성을 시험해보는 노골적이고 은밀한 수백 가지 단계를 밟았다. 각각의 단계는 저항에 부딪히기는커녕, 실리에 밝았던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그다음 번 단계에 깜짝 놀라지 않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증언자는 말한다. “C단계는 B단계보다 아주 더 나쁘지는 않았는데, 만약 당신이 B단계에 대해 맞서지 않았다면, 왜 굳이 C단계에 대해서 맞서야 할까요? 이런 식으로 결국 D단계까지 간 거죠.”

_ 장정일, 2015.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