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진보좌파 진영은 “서민들이 한나라당을 더 많이 찍는다며, 이들을 ‘존재를 배반한 의식’의 소유자이자 ‘계급배반 투표’를 일삼는 존재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치를 바로 잡으려면 계급배반 투표를 일삼는 이 서민들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는 명제가 힘을 발휘해 왔고, 서민의 뜻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면죄부가 주어졌다. 그렇다면 한국의 서민들은 정말 ‘존재를 배반한 의식’의 소유자이자, ‘계급배반 투표’를 일삼는 존재인가.”

1-2. “문제는 계급배반 투표가 아니라 투표할 이유 자체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정치에 있는 것이다. 이 점은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투표를 할 경우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정당이 이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픈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아파트가 많고 주택 소유자가 많은 부자 동네는 열심히 투표를 하고 대개 한나라당을 찍는다. 아파트가 적고, 무주택자가 많은 가난한 동네는 투표를 잘 안 하지만 하게 되면 민주당을 찍는다.”

1-3. “셋방 사는 사람들은 2년도 채 살지 못하고 떠나니까 내 동네라는 관념이 생길 수 없고, 따라서 지방선거든 총선이든 지역에서 벌어지는 선거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아파트와 자기 집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동네는 아파트 값을 올려줄 것이라고 믿는 후보를 찍기 위해 열심히 투표장에 나오게 된다.” “서울과 경기에 집을 한 채 또는 그 이상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다.” 

1-4. “어느 정당이 가장 잘 소통하고 있나? 한나라당이다. 자신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은 부자들과 중상층 유권자들을 투표장에 더 잘 불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당이 가장 지지자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나? 민주당이다. 민주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은 중하층 내지 서민들을 투표장에 불러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 정당들은 어떤가? 아직 정당으로 인정 못 받고 있다. 어느 계층으로부터도 뚜렷한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또는 진보신당은 동네별 특성과 지지율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다. 진보 정당은 자신만의 지역 기반 갖지 못한 채 유동하고 있다.”(손낙구,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 수도권편>)

 

2-1. 저자 인터뷰: “부자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나 모두 계급투표를 한다.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투표를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셈이다. 투표율이 낮은 동네의 정당 지지도를 보면 한나라당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게 의미하는 게 뭐겠나. 한나라당은 싫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을 찍고 싶지도 않고 자신들을 대변할 정당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가, 그런 고민도 많았지만 이번 조사 결과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누구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한다. 이기적인 동기, 그게 바로 현실정치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쇠락하고 있는 건 이들에게 아무런 동기부여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정환)

2-2. 주요 논평들: 1) 최장집: “이 책은 주거형태, 주택소유를 중심으로 한 한국 사회 자산구조의 변화와 지역적 분포를 전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 … [그로 인해] (신자유주의 이후 나타난) 사회경제적 변화가 어떤 투표행태로 연결되는지를 알 수 있게 됐다.” “전체 국민의 55%, 셋방 사는 국민의 80%가 한 집에 5년 이상 살지 못하고, 절반 이상은 최소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닌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한 장소에서 일정기간 정착해 살면서 공동체도 형성하고 인간관계도 맺는다. 인간의 심미적 정서의 원천이 주거환경이다. 그런데 주거환경이 이렇게 변했으니 한국 사회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이웃은 언제나 타인이다. 정상적인 사회구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 위험한 사회구조다.” 2) 조기숙: “손씨의 자료는 기존 통념으로 인식되던 ‘계급배반’ 투표를 정면으로 뒤집는다. 손씨는 이에 대해 기존 통념의 근거자료는 주로 여론조사이고, 그것은 표본이 1000명 정도이기 때문에 근본적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모집단이 아무리 커도 표본추출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1200명 정도의 표본으로도 여론조사는 충분히 신뢰할 만한 분석결과를 낳는다. 전수조사의 결과가 표본에 의한 연구결과와 통계적으로 달라질 가능성은 오차범위 내에서만 존재한다.” “집합자료에 기반하여 저소득층이 한나라당보다 민주당을 더 찍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참조

2-3. 관련 촌평들: 1) “오늘 아침 신문에서 제일 재미있게 읽은 기사. ‘계급투표’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 _ chemistryofus 2) “계급의식에 따르는 투표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 계급의식이 현실, 혹은 가능성과 전혀 괴리된 환상의 계급의식이란 거죠.” _ breal96 3) “한쪽은 철저히 계급투표를 하고, 다른 편은 지치고 바빠서 투표를 잘 안하거나 자신의 계급에 맞는 정당을 잘 몰라서 흐리멍텅한 투표를 한다는 게 문제 아닐까요?” _ marishin 4) “전 착시가 있다고 봐요. … ‘내 자식도 저렇게 될 수 있다’라는 … 자신들의 이상향(?)에 표를 던지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철저히 계급 투표하는 자들은 어쩔수 없구요.” _ breal96 5) “저는 그게 ‘계급배반’ 투표라기 보다는 ‘상위계급 지향’ 투표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사회 우경화 메커니즘을 분석하는데 아파트만으로 부족하다는 생각도.” _ gaudium … 2/4)에 따르면, 대중의 정체성은 기득권의 멘털리티와 다를 바 없다. 5)는 ‘계급배반’을 ‘상위계급 지향’으로 정정하고, 3)이 제한적 분석이라 촌평하였다. 만약 3)을 고수한다면 - “손낙구의 <<대한민국 정치 사회 지도>>의 분석이 맞다고 치면” - “핵심적인 처방은 ‘토지제도’에 촛점을 맞추어야 하는 건가.” _ gaudium

 

3-1. 경우의 수를 감안하여 상술한 논의를 갈무리하자. ㄱ) ‘계급배반’ 투표가 존재했는가? ㄴ-1) 있었다면, 서민층은 기득권과 정치적 지지가 대동소이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ㄴ-2) 없었다면, 대중의 정치적 성향은 뉴타운 건설경기에 조응하여 부동산 자산 소유 여부에 따라 기득권과 서민층으로 양분된 것으로 해석된다. ㄴ-1)과 ㄴ-2) 모두 일리 있는 가설이다. ㄴ-1)은 [총론적 측면에서] 전 국민을 소득 10분위로 구분한 뒤 지지 정당을 일별하면 ‘계급배반’ 현상을 일반화 할 수 있다. ㄴ-2)는 [각론적 측면에서] 동네별 거주민 현황을 고찰하면 - 비록 월소득이 많을지라도 - 주거 지위 내지 부동산 계급에 따른 [탈정치화된] ‘투표성향’을 확인할 수 있다.     

3-2. 논점은 “계급투표 vs. 계급배반”에 있다. 양자 모두 타당성이 있다. 어찌하여 정면으로 상충된 입장이 공존할 수 있는가? 자의적 해석에 의거한 불명료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계급에 대한 정의’이다. 손낙구가 지목하는 계급은 ‘부동산 계급’이다. 수도권 지역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면 지대가 낮은 지역에 거주할지라도 - 부자가 아닐지라도 - 서민이 아닌 기득권이다. 이러한 관점을 따른다면 ‘계급투표’가 옳다. 반면 지위와 소득을 기준으로 계급을 구분한다면 - 실업자와 비정규직의 수만 감안하더라도 - ‘계급배반’의 주장이 우세하다. 兩是論을 거부하기에 재질문한다. 손낙구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가난한 자는 왜 이명박을 지지하는가”라는 반문이 성립되지 않는가? 다시 말해, 대중은 철저히 자산에 근간하여 투표하였는가? 그렇다면 대중의 ‘우경화’는 담론적 허상이고, 실상은 서민유권자의 지역연계성 약화에 따른 ‘탈정치화’인가?

 

4-1. 부동산에 근거한 손낙구의 계급투표론을 비판한다. 손낙구의 조사결과는 역설적으로 계급투표가 아닌 계급배반을 반증한다. 제17대 대선에서 절대 다수의 서민은 기득권의 대표를 선택하였다. ‘왜 가난한 자는 이명박을 지지하는가’라는 문구가 적시하듯 우경화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낙구는 지역구를 기반으로 구획된 총선과 지방선거를 사례로 들어 계급투표를 주장하였다. 일견 타당하다. 이 기준에 따르면 강남의 32평형 고급 아파트 세입자인 전문직 고소득자는 서민이고, 강북의 15평형 연립 주택 소유주인 저학력 비정규직 내지 생계형 자영업자는 기득권이다. 뉴타운 개발은 자가 소유주에게 호재이기에 그것을 집단적으로 추진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다만 한 가지 재고할 점은 ‘재입주율이 저조한 - 그리하여 교외로 밀려나는 - 영세 원주민이 과연 기득권인가’ 하는 것이다. 손낙구는 현실정치는 이권정치라는 가설을 전제한 채 방대한 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를 자신의 입론인 계급투표에 따라 배열하였다. 그로 인해 실리적 측면에서 계급투표도, 계급배반도 아닌 “서민층의 기득권 지향”이라는 학술적 의의를 부각시키지 못하였다. 만약 해당사항을 의문시하였더라면, 대중이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던 원인을 경제윤리적 차원에서 파악하는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4-2. 어떻게 이와 같은 사태에 직면하게 된 것인가? 한국사회 우경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사회의 교육에 의거한 대중의 학습은 ‘사회의 교육적 기능’을 강조하는 1차적 학습과 ‘교육의 사회적 기능’에 중점을 둔 2차적 학습으로 이루어진다. 1차적 학습이 ‘사회화’로 지칭되는 구조적 배치에 대한 [소극적] 적응이라면, 2차적 학습은 구조적으로 각인된 성찰적 반응으로서 사회화 속에 설정된 이상적 존재 양식을 추구하는 [적극적] 지향을 내포한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전개된 한국사회 우경화 과정을 일별하면 다음과 같은 학습 메커니즘을 확인할 수 있다: ①외환위기 손실의 권위적 배분에 따른 구조적 빈곤의 편중된 사사화(私事化) 속에서 ②김대중 정부의 노동ㆍ복지 정치로 인한 공적 연대의 해체와 ③신용불량 사태에서 파급된 사적 유대의 와해는 대중을 자기 의존적 ‘개인’으로 환원시켰다. ④대중은 각개약진의 생존전략을 억압적으로 채택하였으나, ⑤부동산 가격 폭등 앞에서 자기계발에 의한 자산격차의 만회는 요원한 일이었고, ⑥이로 인해 한국사회에 속한 절대 다수의 대중은 노무현 정부의 금융허브 정책이 견인하였던 재테크 열풍에 편승하게 되었다. ⑦노동하는 주주로서 대중은 기업의 자산가치 증대를 옹호하는 최고경영자와 의사결정을 공유하는 가운데, ⑧동일한 심성구조(mentality)를 내면화함으로써 최고경영자의 관점에서 제 조직을 재편하는 기업사회를 지향하였다. ⑨대중은 기업사회의 가치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이해에 종속된 윤리인 ‘유용한 정의’(practical justice)를 새로운 윤리로 수용하게 되었고, ⑩그 결과 제17대 대선에서 기득권의 심성으로 도덕성 시비를 외면하고 경제적 기대(illusion)에 투표하는 비판적 지지를 단행할 수 있었다.”

 

5. 손낙구의 정리에 의거할 경우, 유동성이 높고 뉴타운 재입주율이 저조한 ‘(재개발이 달갑지 않은) 서민’ 거주지는 파란 색이 아닌 붉은 색을 지지해야 한다. 과연 그러한가? 주지하다시피 2008년 노원(병)의 거주민은 민노당의 ‘노회찬’이 아닌 한나라당 ‘홍정욱’을 선택하였다. 물론 해당 본문 - 저자의 노고 - 을 면밀히 검토해야겠지만, 여기에 통계 분석의 맹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대중이 지향하는 바, 추구하는 삶을 간과하고 있다. 서민이 정치권에 요구하는 것은 “집을 한 채 또는 그 이상 소유”한 기득권으로의 편입이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정당이 대중에게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진보 정당이다. 따라서 향후의 과제는 ‘대중의 입장 내지 이권을 대변하는 진보 정당의 대두’가 아니라 ‘대중의 심성구조 내지 사회윤리가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규명하는 메커니즘 연구’일 것이고, 바로 여기에 민중이 ‘아편’을 외면하게 된 사연도 숨어있을 것이다. “사회적 통념과는 달리 부유층의 종교 편향성은 천주교가 가장 심하다. 부동산이 부를 대표하는 ‘부동산 계급사회’ 대한민국에서 부동산과 학력이 나란히 같은 길을 걷는 건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종교의 길도 같다는 건 슬픈 일이다. 가난할수록 절대자의 위로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 왜 가난한 사람들이 종교적 결속이 낮은지, 천주교가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의 종교가 되고 있는지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