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관련한 한나 아렌트의 불편과 고독을 기억하고 옹호하면서,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한 박유하의 불편과 고독은 외면하는, 아예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렌트가 겪은 불편과 고독은 ‘지금 여기’ 삶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다시 말해서 아렌트의 불편과 고독을 백번 기억하고 옹호한다고 해도 우리는 불편해질 일도 고독해질 일도 없다. 우리가 아렌트의 불편과 고독을 기억하고 옹호하는 이유는 하나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불편과 고독을 알아차리기 위해, 기억하고 옹호하기 위해서다.”

_ 김규항, 2014. 12.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