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마르코 복음서 6:8)

“우리의 삶은 다차원적이다. 이 차원들에 따라 ‘적’의 개념도 달리 규정될 것이다. 이를테면 독일의 법학자 Carl Schmitt의 개념을 빌려 본다면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적과 친구의 구별’이 중요할 것이다. 이런 입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특정한 당파에 서는, 즉 당파적인(partisan) 태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삶(vita activa)을 살아갈 것이다. 철학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어느 입장에도 서지 않는 일종의 판단중지(epoche)가 요구될 것이고, 여기서 철학 특유의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이 성립할 것이다. 우리의 삶 전체가 이것들을 어느 정도 가지고는 있겠으나 우리의 삶의 궁극적·보편적 규준은 ‘사도적 삶’이다. 성서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어떠한 편견도 가지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당파를 벗어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선한 존재이고, 그런 까닭에 세상의 악은 선의 결여일 뿐이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마니교에서 벗어나면서 확고하게 깨달은 바이기도 하다. 적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피조물이고, 그런 까닭에 우리는 친구이다. 적은 ‘아직 친구임을 확인하지 않은 자’일 뿐이다. 그가 가진 정치적 차원을 벗겨내면, 우리의 사도적 삶이 그에게 호소된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것이다.”(강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