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사회과학에서는 공론장(public sphere)이라고도 부른다. 공적 토론이 이뤄지는 공간 내지 영역이라는 뜻이다. 사적 영역과 대비되는 공공 영역으로서의 공론장을 사회과학에서 본격적으로 연구한 이는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다.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공론장을 국가와 시민사회를 매개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결집되는 영역이라고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근대 민주주의는 국가와 부르주아지 간의 갈등이 이 공론장에서 진행되는 토론과 그에 따른 합의를 통해 해결되는 정치체제다. 이 점에서 공론장은 민주주의의 핵심적 거점이라 할 수 있다.

예술과 사회를 다루는 글에서 하버마스의 이론을 먼저 꺼낸 이유는 한 문제적 소설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공론장의 현재의 모습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그 소설은 히인리히 뵐(Heinrich Boll)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Die verlorene Ehre der Katharina Blum)>(1975)다. 뵐은 귄터 그라스와 함께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9시 반의 당구> 등의 소설로 널리 알려진 그는 1972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 뵐이 다루는 주제는 공론장의 폭력이다. 소설은 성실하고 평판이 좋은 이혼녀 가정관리사인 카타리나 블룸이 한 남자와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살인범의 정부, 테러리스트의 공조자, 음탕한 공산주의자로 오해를 받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언론의 폭력에 의해 명예를 잃어버린 그녀는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일간지 기자를 살해한 다음 자수를 하게 된다.

소설의 맨 앞에 뵐은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로이 꾸며낸 것이다. 저널리즘의 실제 묘사 중에 ‘빌트’지와의 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 불가피한 일일 뿐이다’라고 적고 있다.

그가 이렇게 밝힌 것은 이 작품에 그의 개인적 경험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1972년 뵐은 카이저스라우텐이라는 소도시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두고 대중 일간지 ‘빌트’와 논쟁을 벌였다. 뵐은 과도한 추측에 기반해 통속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쓰는 ‘빌트’를 비판했고, ‘빌트’와 이에 동조하는 논객들은 이를 반비판했다.

소설에 나오는 카타리나 블룸은 허구적 인물이다. 하지만 주인공과 유사한 실제 인물이 존재했다. 그는 급진파들에게 숙식을 제공해 결국 해직까지 당한 하노버공대 교수인 페터 브뤼크너였다. 브뤼크너는 나중에 혐의가 없는 게 밝혀져 복직됐지만, 그의 잃어버린 명예는 원래대로 복귀되기 어려웠다. 뵐은 이 소설을 통해 공론장의 폭력성을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

이 소설을 내가 주목한 이유는 공론장이 갖는 빛과 그늘에 있다. 하버마스가 강조하듯 공론장은 근대 민주주의를 열고 그것을 지탱해온 지반이다. 하지만 하버마스는 이 공론장이 20세기에 들어와 ‘재봉건화’를 겪게 됐다고 지적한다. 재봉건화란 공론장에 부여된 정치·사회적 역할이 약화되면서 국가와 시민사회가 다시 봉건사회처럼 재결합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 재봉건화 과정에서 시민들은 더 이상 비판적 청중으로 조직화되지 못한 채 소비문화의 향수자로만 남아 있게 된다. 공론장이 갖는 이러한 그늘과 때때로 행사하는 폭력을 뵐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 용기있게 고발하고 있는 셈이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우리말로 옮긴 김연수의 작품해설을 보면, 하인리히 뵐은 “사람이 살 만한 나라에서 사람이 살 만한 언어를 찾는 일”이 전후 독일 문학의 과제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람이 살 만한 언어를 찾는다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생산적 의사소통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을 창출하는 게 공론장에 부여된 일차적 과제다.

_ 김호기, 2014.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