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문제인가? 믿음의 결여이다. 우리의 믿음은 언약을 전제한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언제나 이미 언약에 대한 믿음이다. 그렇기에 믿음의 결여는 언약의 상실에 기인한다. 왜 언약을 상실하였는가? 비전과 그것을 등치시켰기 때문이다. 비전에 도달할 교두보를 잃고 절망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방황이 시작되었다. 교만한 공로와 열등한 무능, 그리고 나태한 분노의 혼재 가운데 은혜를 부인하고 말았다. 이것이 나의 현실태이다. 소시민적 순종과 축복의 등식에 반발하는 심령이 ‘자기의’에서 솟구친다. 그러나 이는 자기애의 기만이다. 내면을 향한 연민이 외부로 전개되어야 할 헌신을 삼켜버리지 않았는가. 주지하듯 각성은 무책임하다. 어쩌면 각성은 한갓 죄의식을 덜어내는 마스터베이션일지도 모른다. 관건은 수없이 되내인 바 ‘수술 중 각성’의 극복이다. 구속된 배치의 성향을 역행할 수 있을까.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본다. 내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