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study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이 다르게 씁니다. 일본에서는 공부를 ‘勉强(벤교)’라고 하는데, 뭔가 억지로 시키는 의미가 큽니다. 중국에서는 ‘念書(니엔수)’인데, 그냥 책을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왜 우리는 이들 단어를 택하지 않고 공부를 사용했을까요? 억지로 시키거나 멍하니 앉아 책을 읽는 게 공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그런 면에서는 우리 조상들이 한 수 위입니다).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나가면서 실력을 쌓는 것이야말로 공부라는 거죠. 단순히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몸의 단련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단련을 마무리한 공부의 달인은 돌발 상황에서 실수하지 않습니다. 또한 무방비 상태에서도 결코 당하지 않습니다. 즉 머릿속으로 계산하지 않은, 몸에 자연스러운 흐름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찌 공부하지 않겠습니까? 쿵푸를 게을리 할 수 없겠습니다. 지겹게도 공부했지만, 이젠 조금 다른 공부의 세계로 들어서는 건 어떠신지요?”

“몸에 자연스러운 흐름이 배어” 있도록 하는 것은 ‘잦은 경험을 통한 학습’의 산물이지, 자아 경계의 확장인 공부로부터 도출되는 당위적 귀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