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품이 국민적 텍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내적으로는 자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제시하고 외적으로는 자국의 정신문화적 가치를 과시할 수 있는 것이 요구된다. 메이지 시대 이후, 무사도 윤리에 통하는 정신주의는 국민 도덕의 근간이 되었다. 가라사와 토미타로(唐沢富太郎)의 『교과서의 역사』에 의하면, 『심상소학독본(尋常小学読本)』의 편찬 방침으로 “일관되어 있는 것은 서양 문명에 대한 일본 문화나 정신의 우월성 주장”이다. 곧 “서양의 물질문명에 대한 일본 정신문화의 우위”를 나타내는 것에 주안을 둔 것이다.
『마음』이라는 텍스트는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는 ‘개인의 마음’과 메이지 시대를 살아온 ‘신민의 마음’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의 ‘마음’의 이야기가 중첩되어 중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 지금까지 메이지의 종언과 함께 선생이 자살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어 왔는데, 그것은 이러한 중층성이 초래한 결과일 것이다. 이 중층성은 이 텍스트가 지닌 정치적 모호함의 근원을 이루기도 한다.
『마음』은 단지 읽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1910년부터 사용된 제2기 국정 『심상소학독본』은 이노우에 테츠지로(井上哲次郎)나 하가 야이치(芳賀矢一) 등이 편찬한 것인데 그 ‘편찬 취지서’를 보면 “충군애국의 정신을 갖고 쾌활 근면 충성으로 직무를 다해야 하는 국민의 견실한 기풍을 양성하는 것이 본서 편찬의 주안점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전후 교육 이념은 메이지 시대의 그것과는 달라졌지만 국가가 필요로 하는 ‘견실한’ 국민을 창출한다는 대전제는 변함이 없다. 국가와 국민을 상상하여 정신주의 윤리를 내세우는 『마음』도 여러 교육 현장에서 ‘견실한’ 국민을 양성하기 위한 수신서로서 꾸준히 읽혀 왔다.
‘정진’, ‘자활’, ‘맹진’, ‘금욕’, ‘도의’, ‘향상심’, 이들은 ‘선생의 유서’ 속에서 K의 성격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말인데 이것은 근대화 속에서 일본사회가 당대의 청년 및 청소년들에게 요구하던 정신 윤리의 덕목과도 일치한다. 또한 이러한 정신적 고결함을 지향하였던 것은 ‘선생’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대저 책의 이야기와 학문의 이야기, 미래의 사업과 포부와 수양을 화제로 해 온” 두 사람은 상승 지향의 기개로 고양되어 있던 메이지라는 시대를 상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나쓰메의 자기 본위 사상이 전후 일본 국민의 이데올로기적 통합에 기여했을 것이라는 추측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나쓰메를 비롯한 근대 일본의 지식인들은 일본/서양의 이원론적 구도에서 세계를 파악했다. 서양 문물의 압도적 영향 아래 놓인 근대 일본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자기 본위를 주창했던 나쓰메에게 ‘서양’은 영국 등 서유럽을 의미했다. 그리고 패전과 함께 미국에 의한 점령 통치기를 거친 전후의 일본인에게 미국이 곧 ‘서양’이 되었다. 즉 전후에도 자기 본위는 일본인에게 절실히 필요한 규범적 가치였고, 『마음』에 투영된 금욕적 정신주의는 국민적 도덕으로 결정(結晶)될 수 있었다. 친구의 자살에 대한 죄의식으로 번민하며 스스로 절대 고독의 감옥에 갇혀 살아오다 스스로의 윤리적 판단에 의해 극단적인 ‘자기 희생’의 방식으로 생을 마감한 ‘선생’은 ‘고귀한 일본인’을 표상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바람직한’ 국민으로서의 품성을 함양하는 수신(修身) 교사이기도 한 것이다.
나쓰메는 천황의 사후 발표한 「메이지 천황 봉도사(明治天皇奉悼之辭)」에서 “과거 45년간에 발전한 가장 빛나는 우리 제국의 역사와 함께하신 잊을 수 없는 대행(大行) 천황께서 지난 30일 붕어하시다.”라고 적은 바 있다. 이러한 메이지 천황의 치세에 대한 나쓰메의 칭송을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비자발적으로 표명된 의례적 언설로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는 대다수 일본인 연구자들의 견해에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나쓰메는 메이지 천황의 죽음을 계기로 신민(국민)으로서의 자각과 국가와 시대에 대한 귀속 의식을 보다 강화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근대 일본의 정신사를 논할 때, 서양화(구화)와 일본 회귀의 주기가 반복된다는 설명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일본 회귀 논리의 핵심을 구성하는 것은 아마도 ‘화혼양재’ 이데올로기일 것이다. ‘화혼’ 즉 일본 정신의 구현은 일본 근대 문학에 부여된 중요한 과제였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설 『마음』 속에서 극단적인 정신주의와 함께 표현된 개인의 ‘마음’은 언제든지 마음의 집합체로서의 ‘화혼’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실체로 치환될 수 있다.
_ 윤상인,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2015/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