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말처럼 80년대는 불의 연대였다. 뜨거웠고 변혁의 열기가 충일하던 연대였다. 이성복은 문학적으로 볼 때 자유주의자이다. 그는 정치적 실천보다 내면 탐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당시는 대학교수들이 시국사건에 대해 서명의 형태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서슬퍼런 군사독재 아래서 서명 결과 어떤 불이익이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누구보다 먼저 서명자 명단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지식인의 소명을 다했다.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당시 민주화운동가로 명망 있던 교수들도 처음에는 서명을 피했다가 일차적으로 서명한 교수들이 별 탈 없자 그 다음부터 서명에 동참하는 실망스런 기회주의적 모습을 드러낸 경우가 허다했다. 이런 이들과 비교해보면 그는 애초 민주화운동한다고 유별나게 나서지 않았지만 자기 앞에 오는 책무는 회피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없이 그런 상황을 지켜보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그가 정직한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문학에 대해서도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깊은 신뢰를 보냈다.”(김용락,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