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멩겔레Josef Mengele는 인간 수집가였다. 폰 페어슈어처럼 그도 쌍둥이 연구로 교수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화물 전용 플랫폼에 내린, 죽음을 목전에 둔 무리들 가운데서 찾아낸 쌍둥이 아이들을 ‘나의 기니피그’라고 불렀다. 종종 그는 쌍둥이를 차에 태우고 수용소 길을 따라 달리기도 했고, 그들에게 단 것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멩겔레는 아이들의 몸에서 내장을 들어내기 위해 그들을 자신의 해부용 탁자 위에 눕혔다. … 그를 아우슈비츠로 보냈던 오트마 폰 페어슈어 교수는 단 한 번도 그 일로 인해 책임을 추궁받지 않았다. 그는 1952년에 독일인류학회의 회장 직을 맡았다.”(귀도 크놉, <<나는 히틀러를 믿었다>>, p.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