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예술가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출발점으로 삼아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내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이것만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예술 창작이라고 믿는다. (……) 사실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해의 예술가들은 별로 고안할 만한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문제는 인위적인 고안과는 정반대로 그들의 현실을 어떻게 믿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카리브 해에서 태어나 카리브 해에서 자랐다. (……) 그래서 나는 현실보다 더 가공할 만한 것을 떠올릴 수도 없었고 (……) 내가 가장 멀리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기껏해야 시적 영감을 가지고 그런 현실을 문학 작품 속에 옮긴 것이다. 내 책 중에서 단 한 줄도 그곳에서 일어났던 실제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기존 사실주의의 시간, 공간, 정체성에 의문을 던진다. 4년 11개월 2일 동안 내리는 비, 과거와 단어의 의미까지도 지워 버리는 불면증, 항상 3월이고 언제나 월요일인 방, 집 안마당의 밤나무 아래서 수년간 죽지도 살아 있지도 않은 상태로 있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마콘도 사람들이 지구 상에 다시 존재할 수 있는 기회조차 앗아간 마지막 회오리바람 등으로 인해 시간 개념은 흔들린다.
『백년의 고독』을 읽으면 어느 새 비현실 같은 것들이 현실적인 것과 혼합되면서 독자들이 기존에 지니고 있던 현실의 지평이 증폭됨을 느낄 수 있다. 이 현상은 마술적 사실주의가 미메시스의 기능과 지평을 확장시킨 것이며, 동시에 마술적 역사주의가 추구하는 역사성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다시 말하면, 종래의 리얼리즘이 미메시스라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상상력을 조직적으로 통제한 “허구에 대한 수치스러운 금지 조치”인 것과는 달리, 마음껏 상상력을 분출하는 마술적 사실주의는 이성 중심적 사실주의를 극복하고 전복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_ 송병선, 2015.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