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이던 빈에서 태어난 한스 셀리에는 1929년 프라하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고 2년 뒤 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1년 미국 록펠러재단의 장학금을 받고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1934년 캐나다 맥길대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셀리에 교수는 당시 핫 토픽이었던 호르몬 연구, 즉 내분비학에 뛰어들었다. 마침 옆 실험실의 생화학자가 동물의 난소에서 어떤 물질을 분리했는데, 내분비학자였던 셀리에는 자신이 그 물질의 역할을 규명해보고자 했다. … 자신이 새로운 여성 호르몬을 발견했다고 생각한 셀리에 교수는 본격적인 실험에 들어갔다. 추출물 대신 식염수를 주사한 대조군 실험을 병행해 난소 추출물이 정말 이런 변화를 일으킨다는 걸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대조군인 쥐들도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묽은 소금물 주사를 맞고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실험동물이 보인 변화가 난소 추출물과 관련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두 집단이 공통으로 경험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사실 쥐를 다루는 데 서툴렀던 셀리에 교수는 난소 추출물이나 식염수를 주사할 때마다 쥐들과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 일쑤였다. 쥐들은 그의 손을 빠져나갔고 실험실을 뒤집어놓다시피 했다. 또 꿈틀거리는 쥐에게 주사를 놓는 것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는 실험 과정에서 쥐들이 매일 이런 불쾌한 경험을 한 결과 위와 같은 신체 변화가 나타났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를 증명하는 실험에 착수했다. 한겨울에 쥐들을 연구소 건물 지붕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못 견디게 더운 보일러실에 두기도 했다. 또 일부러 상처를 낸 뒤 치료하기도 했다. 그의 예상대로 이렇게 시달린 쥐들 역시 비슷한 신체 변화를 보였다. 1936년 셀리에 교수는 자신의 발견을 과학저널 ‘네이처’에 한 페이지짜리 짤막한 논문으로 정리해 발표했다. 논문의 제목은 ‘다양한 유해 자극으로 생긴 증후군’으로 여기서 그는 “손상을 입히는 자극의 유형에 무관하게 전형적인 증상이 나타난다”며 이를 ‘일반적응증후군(General Adaptation Syndrome, 줄여서 GAS)’이라고 명명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셀리에 교수는 이 증상을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