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에게는 무엇보다도 꿈의 존재가 무의식의 명백한 증거이자 무의식의 활동을 추적해볼 수 있는 대상이었다. 매일매일 사람의 마음속에서 상영되는 꿈이라는 드라마의 연출가가 바로 무의식인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해두자. 무의식은 꿈이 아니라 그 꿈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꿈 자체가 무의식이라는 생각은 프로이트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꿈이 무의식이 아닌 것은 꿈에 관한 프로이트의 이론이 해몽 체계가 아닌 것과 같다. 꿈은 다만 무의식을 위한 극장일 뿐이다.
무의식을 규정함에 있어, 단지 의식의 표면에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속성만을 지칭하여 무의식적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억압과 자체 검열에 의해 통상적인 접근이 차단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지금 의식 속에서 활동하지는 않고 있지만 계기가 주어지면 언제든 의식에 떠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프로이트의 용어에 따르면 전의식이다. 이에 비해 무의식은 어떤 특별한 이유 때문에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이 억제되어 있어, 우리로서는 쉽게 접근하거나 확인해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컴퓨터에서 현재 작동되고 있는 프로그램이나 파일이 의식이라면, 현재 가동되지는 않고 있으나 하드에 저장되어 있어 불러내고 싶으면 언제든지 화면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는 파일이나 프로그램은 전의식이다. 이에 비해 무의식은 지워져버리거나 덧씌워져버린 파일들이다. 이들은 보통 방법으로는 불러내기 어렵고, 아주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가까스로 복구를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처럼 그 어떤 이유로 인해,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쉽게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마음의 영역이 무의식이다. 말을 바꾸자면, 내면화된 금지와 억압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무의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_ 서영채, 인문학 개념정원, 문학동네, 2013, 30~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