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일생일대 과제는 정신분석학을 ‘유대인의 학문’이라는 국지적 울타리를 넘어 보편적 학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기에 프로이트의 제자가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유대인들이었다. 그가 1906년 독일계 스위스 의사 카를 융을 만났을 때 다른 제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그를 후계자로 삼았던 것도 그 ‘유대인 한계’를 넘으려는 몸부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