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7월 1일 솜 전투 첫 날에 발생한 사상자 수는 정말이지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8사단의 두 개 연대 전체가 오비예 주위로 포진한 독일군 기관총 사수들에게 몰살당했다. 2시간 만에 이 사단은 장교 300명 가운데 218명을, 사병 8,500명 가운데 5,274명을 잃었다. … 프리쿠트 지구에서는 제10웨스트요크셔와 제7그린하워드의 두 대대 전원이 위치를 잘 잡은 단 한 정의 맥심 기관총 앞에서 거의 완벽하게 몰살당했다.” “솜 전투의 첫 날처럼 현대식 무기에 맞선 보병 돌격전이 어이없이 되풀이 되었고 양측은 공격을 피하기 위해 깊은 땅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이 참호 속에서 양 쪽 군대는 1460일, 즉 4년 동안이나 머물러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에 맞서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의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 마지노선이라는 참호를 파서 만반의 대비를 갖추었으나 독일군은 ‘전격전’을 통해 이를 간단히 돌파해버렸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두 가지 사례에서 변화한 대상 세계를 파악할 인식의 틀이 없을 때, 아니 그러한 틀을 형성해야 한다는 자기 반성 자체가 생겨나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직접적인 ‘효과’를 목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