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세력은 1792년 8월 왕정을 끝장내고 공화정을 선포한다. 자코뱅당은 반혁명을 막기 위해서는 왕의 처형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재판을 시작한다. 왕에 대한 재판은 혁명 법률에도 어긋난다며 반대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는 “왕은 무죄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를 무죄라고 선언하는 순간 혁명이 유죄가 된다”며 밀어붙인다. 루이 16세는 1793년 1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슬로 사라졌다.
청렴결백했던 로베스피에르는 돈도, 쾌락도 몰랐다. 오직 혁명만을 생각했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냉혈적이었지만 멋쟁이였다. 그는 자신에게 부여한 엄격한 미덕을 타인에게도 그대로 요구했다. 그래서 미덕을 개인적으로 독점했다는 비판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