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티(1. 12.), 한국 인천(2. 9.), 칠레(2. 27.), 대만(3. 4.), 중국 탕산(3. 6.), 터키(3. 8.), 필리핀(3. 26.), 일본(3. 30.), 태국(4. 5.), 인도네시아(4. 7.), 중국 칭하이성(4. 14.), 멕시코/과테말라(4. 18.), 한국 안동(4. 27.) 지진 그리고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4. 14.). 자연재해 관련 보도를 접하며 인간이 거주하는 시간과 공간의 토대를 의식하게 되었다.

2. “절정에 이르렀던 중세의 봄은 여름을 거치지도 않고 가을로 접어들었다. 1300년경부터 유럽은 추워지기 시작했다. 1315년 부활절이 지나고 삼 주일 뒤부터는 엄청난 비가 오래도록 내렸다. 어떤 연대기 저자는 ‘감당할 수 없이 많은 양의 비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온 땅을 거대한 깊은 흙탕 늪으로 만들었다’라고 썼다. 중세인들은 이것을 분노한 신의 처벌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그 당시부터 유럽대륙에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전쟁, 끊임없는 살육, 군대의 원정이 그치지 않았고, 탐욕과 무절제한 야심에서 벌어지는 충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평탄하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했던 농부의 삶은 금세 고통으로 가득 찼다. 1315년 유럽 북부 지역의 마을은 이미 절망적이었고, 1316년 말경 농부들과 노동자들은 결국 거지가 되었다. 그들은 죽은 가축을 먹거나 들판의 풀을 먹으며 간신히 살아갔다. 유럽의 공동체들은 차례로 절망에 빠지고 붕괴되었다. 이 모든 붕괴가 1348년의 흑사병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 신비주의는 어지롭고 고통스러운 세상에 등장하는 반지성주의의 최절정이다. 신비주의는 이성적 분별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무차별로 통합시키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런 까닭에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에서 완성된 신비주의는 ‘중세의 가을’의 사상적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중세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신비주의자 에크하르트의 편을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공격하고 ‘유식한 무지’를 옹호하였다.”

3. 종말론을 향해 치닫는 새로운 중세가 임박하였다. 그렇게 추정된다. 만화로 된 요한계시록의 출간은 의미 있는 사건이다. 인문 고전의 공부가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