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이란 어려운 말을 끌어들이지 않고는 지적인 대화에 끼어들 수 없던 1990년대 말의 일이었다. 그때에도 나란 인간은 농담을 만드는 일에 열중하였고(성공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마침내 내 딴에는 제법 재미있고도 지적인 우스개 하나를 만들었다. “있잖아, ‘ㄱ’자로 시작하는데 듣는 사람을 헐뜯는 말이 뭔지 알아?” 친구는 눈을 부릅뜬 채 나한테 쏘아붙였다. “그래 알지, ‘김태권’!”

물론 내가 바란 답은 그게 아니었다. ‘ㄱ’자로 시작하는 헐뜯는 말이 시대마다 변했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①거리에서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던 90년대 초에는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겁쟁이’라는 말이 나빴고, ②문민정부가 시작되던 90년대 중반에는 전향을 거부하는 단호한 태도가 칭찬받았기 때문에 ‘개량주의자’라는 말이 욕처럼 쓰였다. ③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던 90년대 말에는? 모더니티를 청산해야 할 적폐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정답은 ‘근대주의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