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라시 : “1989년은 미소라 히바리가 죽고, 중국에서 천안문사건이 있었으며,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고 천황이 죽어 쇼와기가 끝났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중에서 특히 베를린장벽이 붕괴되었을 때, 만감이 교차하셨을 텐데, 그 점과 관련하여 어떠했습니까?” “당시 가라타니 씨는 <아사히신문>에서 진정한 공산주의는 현상을 지양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소련이 붕괴했다고 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그 말이 매우 기억에 남아서 가라타니 씨의 주소를 찾아 팬레터를 보낸 기억도 있습니다(웃음).”
가라타니 : “1991년에 소련이 현실적으로 붕괴한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오히려 소련이라는 존재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소련의 붕괴로 구좌익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고 이야기됩니다. 이제까지 신좌익은 소련이나 구좌익을 비판하면 됐습니다. 즉 신좌익은 소련이나 구좌익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붕괴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비판하면, 뭔가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눈앞에서 그것이 붕괴하자 더 이상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없었습니다.” “소련이 붕괴하자, 예를 들어 자본주의의 탈구축적 힘은 완전히 노골적이 되어 전 세계를 해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글로벌리제이션이지요. 이 자본주의의 현실에서 어떻게 할까. 다시 그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단순한 비판이나 회의로는 부족합니다. 뭔가 적극적인 이념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 시점에서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미래사회에 대해 구상하는 것 자체를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도르노는 <부정변증법>에서 부정의 부정은 지양이 아니라 부정의 철저화라고 말했습니다. 즉 뭔가 목적이나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비판ㆍ부정을 영속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점점 깨닫게 된 것은 그 같은 태도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정의 부정’을 계속 해간다고 해도 어떤 이념이 없다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처럼 말하는 마르크스에게 실은 공산주의라는 이념이 있었습니다. 그는 억지로 실현하는 것과 같은 설계적인 이념을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산주의라는 이념을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를 나는 칸트에게서 배웠습니다.” “칸트는 ‘구성적 이념’과 ‘규제적 이념’을 구별했습니다. 구성적 이념은 현실화되어야 하는 이념입니다. 규제적 이념은 결코 실현될 수 없지만 지표로서 존재하고, 그것을 향해 서서히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념입니다. 이렇게 보면 마르크스가 부정한 것은 구성적 이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성적 이념을 휘두르다 스스로 좌절한 사람들이 이번에는 이념 일반에 대한 원망을 터뜨렸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그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