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는 <군주> 6장에서 지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를 두고 “무장한 모든 예언자들은 획득했고, 무장하지 않은 사람들은 파멸당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설득하기란 쉽지만, 설득된 상태를 유지하기란 어렵다’는 말, 더 이상 믿지 않을 때 ‘강제로’(per forza) 믿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충고,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모세도 자기를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도륙했다는 예를 덧붙인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에 대한 이야기는 왜 피렌체 시민들이 더 이상 사보나롤라를 믿지 못했는지를 우리에게 일러주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 피렌체 시민들이 더 이상 사보나롤라의 통치를 신뢰하지 않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강론>을 살펴봐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강론> 1권 45장에서, 사보나롤라의 몰락은 ‘통치’ 그 자체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힌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사보나롤라의 거듭된 권고로, 의회는 국사범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죄인들에게도 인민에게 호소할 수 있는 권리를 갖도록 하는 법안을 오랜 진통 끝에 통과시킨다. 그러나 이 법이 승인되고 얼마 후 사보나롤라의 정적들이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 그의 수족과 같은 발로리가 이들의 소청 요구를 묵살한 채 사형을 집행해버린다. 이 사건에 대한 사보나롤라의 침묵은 ‘자기가 만든 법을 자기의 편의대로 어겼다’는 인상을 시민들에게 심어주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키아벨리는 사보나롤라가 몰락한 이유를 인민들의 변덕이 아니라 인민들이 지도자를 신뢰할 수 있는 기반을 지도자 스스로가 파괴한 신중하지 못한 행위에서 찾는다. 사보나롤라의 정치도 파당적 이익의 관철에 불과하다는 체념, 이로부터 사보나롤라의 도덕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증오가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마키아벨리에게 사보나롤라는 선동으로 집권한 후 인민을 억압한 또 다른 형태의 ‘참주’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