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걸음으로』의 프롤로그에서 선생님은 전후(戰後)의 폐허 속에서 “나의 이십대에도 희망은 오히려 더 없었다”(17면)고 회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절망적인 삶에 희망을 가져다준 것은 ‘삶에 대한 번민과 사유’뿐이었다고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기억의 깊이』에서는 ‘나의 삶 나의 길’을 주제로 쓰신 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삶’이라는 제목을 붙인 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혀두셨습니다. “나는 의도적이든 무심코든 간에 ‘그럼에도’라는 말을 많이 썼고, 그 용어에 대한 내 나름의 애착을 가져왔었다. 그것은 반어이면서 긍정이고 양보절이면서 변증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463면) 저는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문학과 비평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제 삶을 이해해보고 싶었습니다. 선생님과의 대화 속에서 저는 자유와 민주라는 개념의 내포와 가치를 오늘날 현실화된 것보다 더 깊고 넓게 상상하는 것이 저희 세대의 과제라는 결론에 도달했는데, 거기에다 ‘삶에 대한 번민과 사유’라는 꾸준한 노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요약될 어떤 낙관적 의지를 더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깨닫습니다. … 그러므로 이 글 맨 앞에 걸어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이어야 합니까, 선생님’이라는 질문의 속뜻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이어야 한다’라는 한 젊은 비평가의 소박한 다짐일 것입니다.
_ 신샛별, 2016. 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