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당히 긴 여생을 전제한다. 그럼에도 신의 보다 목전의 득실에 침륜한다. 왜일까. 왜, 살아선 죽을 듯 굴고, 죽음을 앞두고서야 초연할까. 죽음의 부정과 인정, 자기부인. 여기에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갈라디아서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