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의학부의 前근대적 인턴제도에 반발해 시작된 도쿄대 학내투쟁은 그해 7월 전공투 및 신좌파 학생들의 야스다 강당 점거 봉쇄로 확산돼 갔다. 그해 11월 22일 야스다 강당 앞에서 열린 전국학생총궐기대회에는 전국 111개 대학에서 학생 7천여명이 참가했다.  그러나 야스다 강당 점거 농성 강제해산 이후 일본 학생운동은 점점 과격화해지면서 대중들과 유리돼 간다. 운동을 전쟁으로 규정하고 무장투쟁을 주장한 과격분파인 적군파가 등장해 1970년 3월 요도호를 북한으로 납치하는 사건까지 감행했다. 적군파의 일부와 마오쩌둥주의자 ‘혁명좌파’로 구성된 ‘연합적군파’는 1972년 산속 군사훈련 과정에서 동료 14명을 자아비판 명분으로 살해해 암매장한 것으로 드러나 일본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이 사건으로 일본 학생운동은 결정적인 괴멸 상태에 빠졌다.”

“이 내부 숙청과 내부 린치를 일본에서는 ‘우치게바’(内ゲバ)라 한다. ‘우치게바’(내부라는 뜻의 일본어와 Gewalt라는 독일어의 합성어로 조직 내의 주도권 폭력적 대립을 뜻함)로 인한 서로간의 폭력으로 희생된 피해자만 1969-1999년 동안 무려 1,960건, 사망자 113명, 부상자 4,600명이다. 반체제 운동이 많은 인명 손실로 이어지는 사례는 적지 않게 볼 수 있지만 대부분 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혹은 항의의 수단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는 많은 데 반해, 일본의 경우는 좌파 내부의 대립 항쟁으로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물론 우발적인 충돌에 의한 ‘사고’가 아니다. 정밀하게 계획된 ‘살인’이면서 이론적으로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경우가 많다. 연합적군은 무장투쟁을 위한 산악 훈련 중, 아사마 산장에서 총 14명의 동료를 ‘내부공산주의화의 순화’라는 이유로 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