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예술은 그 숨막히는 지하실에 뚫린 작은 창문 같은 것이었다. 이제 와서는 그렇게 생각한다. 작은 창문은 벽 높은 곳에 있어서 바깥 경치는 보이지 않지만, 하늘의 색깔 변화나 공기가 흐르는 기미는 느낄 수 있었다. 손은 닿지 않고, 창문으로 도망칠 수도 없지만, 그 작은 창문 덕에 살아 있을 수 있었다. … 고야는 궁정화가이면서 자유주의를 신봉했고, 그 자유주의를 조국 스페인에 가져다줄 줄 알았던 나뽈레옹 군대의 잔학함을 보다 못해 <전쟁의 참화> 연작을 제작했다. ‘근대’의 문턱에 서서 그 밝음과 어둠을 응시하고 묘사해낸 고야, 그리고 자신도 찢기듯 죽어간 고야는 나에게 지하실 벽에 뚫린 작은 ‘창(窓)’이었다. 고야처럼 괴로워하고, 고야처럼 싸우고, 고야처럼 죽자. 그 동경이 곧 ‘창’이다.”(서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