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구조』에서 서술한 것과 관련하여 새삼스럽게 다시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헤겔에 대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세계사의 구조』는 헤겔철학을 유물론적으로 비판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헤겔철학을 유물론적으로 비판한 사람은 이미 있었습니다. 마르크스입니다.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 마르크스에 의한 헤겔 비판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다시 한 번 철저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이처럼 생각하게 된 것은 1990년 경입니다. 그 시기 헤겔은 일반인들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메리카 국무성 직원이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을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헤겔에 근거한 생각입니다. 이 말은 세계적으로 유행했습니다. 당시 내가 놀란 것은 아메리카 정부의 고관들이 갑자기 헤겔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는 점입니다. 바로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특별히 놀랄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메리카 네오콘의 대표적 이데올로그는 원래 트로츠키주의자로서 이 방면에 정통했기 때문입니다. 후쿠야마가 헤겔에 대해 공부한 것은 시카고 대학에서 앨런 블룸의 학생으로서 입니다. 블룸은 프랑스 헤겔주의자인 알렉산드로 코제브로부터 헤겔에 대해 배웠습니다. 코제브는 헤겔에 근거한 ‘역사의 종언’이라는 개념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사고한 인물이었습니다. 후쿠야마는 이 개념을 코뮤니즘 체제의 붕괴와 아메리카의 승리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