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학파의 영향을 받아서 그러한지, 역사나 시사는 논해도 인물은 그다지 거론하지 않아요.” 이에 대한 E. H. 카의 입장.

“인간을 개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전기(傳記)이며 인간을 전체의 일부로 취급하는 것은 역사라고 하면서 그 둘을 구별하는 것은, 그리고 훌륭한 전기는 나쁜 역사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것은 솔직한 이야기이다. 언젠가 액턴은 ‘인간의 역사관에서 개별적인 인물들이 유발시키는 관심보다 더 많은 오류와 불공정을 가져다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 역시 비현실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G. M. 영(1882~1959)이 그의 책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Victorian England)의 속표지에 적어 넣은 빅토리아 시대의 격언, 즉 ‘하인은 사람에 관해서 말하고, 신사는 세상사에 관해서 토론한다’는 격언 뒤로 도피하고 싶지도 않다. 전기들 중의 일부는 진정으로 역사에 기여한다. 내 전공분야에서는 아이작 도이처가 쑨 스탈린과 트로츠키 평전들이 그 두드러진 사례이다.”(69~70쪽)

“나는 지금까지도 다음과 같은 헤겔의 고전적인 정의에 더 고칠 만한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시대의 위인이란 자기 시대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고, 그 의지가 무엇인지를 그 시대에 전달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행하는 것은 그의 시대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실현한다.’ … 위인은 항상 기존 세력의 대변자이거나, 아니면 현존하는 권위에 도전할 생각으로 그가 힘을 쏟아 형성시키려는 세력의 대변자이다. 그러나 보다 높은 수준의 창조성은, 나폴레옹이나 비스마르크처럼 기존 세력의 등에 업혀 위대해진 그런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크롬웰이나 레닌처럼 자신들을 위대하게 만들어준 세력을 형성하는 데에 힘을 쏟은 그런 위대한 인물에게서 발휘될 것이다.”(78~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