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연(差延)의 “대안적인 번역어들 중에서 가장 나은 것은 김남두/이성원 교수가 제안한 ‘차이(差移)’라는 용어인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것은 디페랑스라는 개념의 기록학적 측면을 표현하면서도 ‘차이’나 ‘차이’라는 역어와 달리 디페랑스가 지닌 두 가지 의미의 결합 역시 어느 정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 역어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단어 또는 합성어라는 점에서도 디페랑스와 가장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낯설게 하기의 효과라는 측면에서도 ‘차이(差移)’라는 역어는 다른 역어들보다 더 디페랑스에 충실한 역어로 볼 수 있다. 물론 ‘차이(差移)’라는 역어 역시 디페랑스가 함축하는 모든 측면들을 다 담아내지는 못하며, 독자들에게 상당한 불편을 준다는 난점을 지니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차이(差移)’는 기존에 제시된 번역어들 중에서 디페랑스라는 개념에 대한 가장 충실한 번역어라고 생각한다.”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De la grammatologie, Minuit, 1967)에서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를 분석하면서 소쉬르의 구조언어학이 지닌 모순의 근원에는 문자기록에 대한 불신과 폄하의 태도가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디페랑스라는 신조어는 소쉬르를 따라 (기호) 체계 내의 항들은 실정적인 내용, 가치를 갖는 게 아니라 다른 항들과의 차이를 통해서만 자신의 고유한 동일성을 갖게 된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소쉬르가 문자기록을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음소(phonème)를 중시한 데 비해, 디페랑스는 음성상의 차이의 조건이 문자기록상의 차이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문자기록이야말로 ‘차이의 경제’를 (불)가능하게 해주는 근본적인 조건이라는 점을 밝혀준다.”
“소쉬르의 차이의 체계가 정태적인 공시태에 머물고 있는 것에 비해, 디페랑스는 모든 차이가 ‘지연’의 작용으로서 ‘시간내기’(temporiser)와, ‘차이’의 작용으로서 ‘공간내기’(espacement) 운동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데리다가 말하는 ‘시간내기’는 쉽게 말하면 가령 전기밥솥의 타이머의 작용 같은 것을 의미한다. 타이머는 밤 12시에 이루어질 작용을 아침 6시까지 지연하는 작용을 한다. 또한 ‘공간내기’는 컴퓨터의 스페이스바의 작용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알다시피 스페이스바는 간격을 띄우는 기능을 하는데, 데리다가 볼 때 로고스, 곧 의미의 질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단어를 구성하는 음절들 사이의 결합,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의 배치 및 기술적 간격 두기가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