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우리 내면에 엄연한, 악의 가공할 힘을 그린 짤막한 소설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양심과 욕망의 권력, 그 둘의 항시적 분열상태에 있을 뿐 아니라, 둘 다 뿌리가 깊어서, 어느 쪽이 진정한 자아인지 구분할 수 없다. 지킬이 확인한 것은 악은 숨어있고, 상상 이상으로 강하며, 사실상 제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어느 날 그는 공원벤치에 앉아 자신이 지난 몇 개월간 행했던 선행들이 마침내 살인자 하이드를 영구히 제압했으리라고 흐뭇해하지만, 아래쪽을 보자 그의 손에 힘줄이 솟고 털이 자라면서 자신이 어느새 하이드로 되돌아갔다는 것을 발견한다. 도덕적 노력을 통해 자신을 구원하려 애를 쓸수록 번민은 오히려 커가고 내면의 악은 더 강해질 뿐이라고, 저자는 탄식하는 것이다. 더 이상 지킬로 돌아갈 수 없었던 하이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 도스토옙스키의 말년 작품인 『카라마조프 형제들』은 ‘신이 없어도 도덕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진다. 구원이 외부에서 오지 않는 한, 인간은 지킬박사의 절망적 딜레마에 영원히 갇힐 운명일지 모른다.”(고세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