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관점이나 논문, 이를 발표하는 저널, 연구주제나 연구대상 등은 여러 행위자들 간에 존재하는 객관적 관계구조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 점은 앞으로의 성찰을 위해 중요한데, 아인슈타인의 은유를 다시 사용한다면 행위자들 간에 존재하는 객관적 관계구조가 바로 장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객관적 관계구조’는 행위자들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결정해줍니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구조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그들의 입장을 결정하거나 적어도 소극적으로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경제학자나 작가 또는 예술가 등 특정 장에 속해 있는 행위자의 말이나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이 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입장을 인식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행위자가 전체 사회공간에서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위치, 즉 맑시즘의 전통에서 계급조건이라고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1968년 시기에 ‘그가 말하는 곳’(d’ ou il parle)이라고 상당히 막연하게 불리던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위자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당 장의 구조를 만들어낸 객관적 관계를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이 구조는 특정 순간의 과학적 자본의 분배에 따라 결정됩니다. 달리 말해 소유자본의 양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각각의 행위자(개인 또는 기관)들은 자신의 비중과 다른 모든 행위자들의 비중, 즉, 전체 공간에서의 비중에 의해 장의 구조를 결정합니다. 동시에 각 행위자는 반대로 공간의 구조가 주는 제약 속에서 행동하기도 하는데, 그 제약은 자신의 비중이 작을수록 강력하게 강요됩니다.” _ 피에르 부르디외, <과학의 사회적 사용>, 창비, 2002, 27~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