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서는 ‘무’가 도출될 뿐이다(Nothing comes from nothing). 시원이 없다면 진화도 없다. 즉, 흙이라도 있어야 인간이 있고, 도토리가 자라나야 떡갈나무가 된다. 만약 위의 전제에 수긍한다면, 창조론과 진화론은 더이상 대립쌍이 아니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각각 시원의 전과 후를 사유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논의의 차원이 상이하다. 창조론은 신을 개입시켜 토대를 마련하고, 진화론은 그 토대 위에서 운동을 전개한다. ‘다이너마이트’ 제작의지와 폭파원리를 혼동해선 안 된다.’

* “불교는 붓다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법을 믿는다. … 붓다마저도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오로지 불법에만 의지해서 [몰주체로] 자신을 수련해 나가야 한다는 것 등은 신도들을 편협한 독단에 빠지지 않게 하는 현명한 요인이”나 신을 사상함으로써 불교는 종교에서도 탈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