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는 “미래의 어떤 지점으로부터 돌아봄으로써 역사의 객관성을 찾을 수 있다는 논쟁적 주장을 전개했다.” 그는 역사의 객관성을 예측타당도로 치환하고 그 준거로 역사의 목적, 즉 진보를 내세웠다. 벌린의 표현에 착안하면 승자의 자기 충족적 예언이다. 이것은 종말론적 사상이 아니다. “진정한 기원은 시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에 있다.”(에른스트 블로흐, <희망의 원리>)
“12월 <역사란 무엇인가>가 출판되자 벌린은 <뉴스테이츠맨>에 서평을 실어 카에 대한 새로운 전선을 구축했다. 이제 1940년대부터 시작되어 잠시 중단된 뒤 이어지는 전투에 벌린이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서평은 ‘카 교수의 승전 부대(승자 중심) 사관’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벌린이 카를 처음 공격한 것은 오래 전에 그를 헤겔주의자로 비판한 일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칸트가 말하는 목적론에 가깝다고 보는 쪽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카는 ‘역사는 진보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 대목에서 “국가를 형성한 그런 민족만이 우리 눈에 띌 수 있다”라는 헤겔의 경구를 실제로 승인하고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신념을 재확인했다. “역사가는 승자든지 패자든지 간에 대체로 무언가를 성취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둔다.” 이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나는 크리켓 역사 전문가는 아니지만, 아마도 그 역사를 장식한 것은 수백 점을 낸 사람들의 이름이지 점수를 내지 못했거나 실격한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이런 주장은 벌린에게 좋은 공격거리였다. 벌린이 보기에, 카가 역사 속에서 보려고 한 것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다는 사실”이었다. 벌린은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간에 일어난 사실 그 자체만으로 그것은 좋은 것이다. 또 우리가 지나온 역사의 단계들이, 단지 그 목표가 실현되었다는 이유로 그것은 올바른 단계였다고 말하는 것이 된다.” 벌린은 이것이 “승전 부대의 이야기이자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성취하였든지 간에 성취된 것은 진보라고 주장하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카 교수의 생각에서 근본이 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중략) 서평에 대해 발표되지 않은 답글에서 카는 벌린을 다음과 같이 비난하고 있다. “나는 이 ‘승자-패자’의 문제로 여전히 당혹스럽다. 크리켓의 역사를 쓴다면 나는 잭 홉스(Jack Hobbs) 경의 2만 점 득점 기록을 다룰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나를 고득점자를 찬양하면서 공을 놓쳐 팀 내에서 역할을 다루지 못한 괜찮은 젊은 선수를 쓰레기로 취급했다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영국식 방식이라고 생각된다.”(381~3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