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1월부터 3월까지, 카는 케임브리지 밀레인에 있는 강연장으로 나가 가득 메운 청중 앞에서 강연을 했다. 신중한 준비 끝에 열린 카의 트레벨리언 강좌(G. M. Trevelyan lectures)는 인과관계와 우연, 자유의지와 결정론, 개인과 사회, 주관성과 객관성 사이의 긴장 관계에 대한 독자적 견해를 밝힘으로써 오랜 논쟁에 크게 기여했다. 강연은 생생한 사례와 빼어난 논리뿐만 아니라 다음의 세 가지 문제와 관련하여 지극히 논쟁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첫째, 8년 전 ‘역사적 필연성’에 관한 오귀스트 콩트 기념 강좌에서 제기한 결정론에 대한 이사야 벌린의 비판을 강력하게 재반박하였다. 둘째, 미래의 어떤 지점으로부터 돌아봄으로써 역사의 객관성을 찾을 수 있다는 논쟁적 주장을 전개했다. 마지막으로 역사 서술에서 상대주의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앞의 두 가지보다 결코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상대주의에 관한 논의는 우선 벌린과 카 사이에 잠재되어 있던 논쟁을 다시 촉발시켰다. 나아가 휴 트레버-로퍼가 주도하는 새로운 전선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프리 엘턴(Geoffrey Elton)을 비롯한 제도권 역사가들을 분개시켰다. 그들은 카의 논의를 전문 역사가의 기준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카의 강연은 지엽적이긴 해도 케임브리지대학의 역사 교과과정에 개혁을 가져왔다.”(363~364)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결정론에 관해 무엇을 말하였는가.

“역사 연구는 원인에 관한 연구이다. … 역사가는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렇기 때문에 답변을 내놓고자 한다면 쉴 수가 없다. 위대한 역사가 – 혹은 더 폭넓게 말하자면 위대한 사상가 – 란 새로운 것들에 관해서 또는 새로운 맥락 속에서 ‘왜?’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그의 책 첫머리에서 자신의 목적을 이렇게 규정했다. ‘그리스인들과 야만인들의 행위에 관한 기억을 보존하는 것, 그리고 특히, 무엇보다도, 그들이 서로 싸운 원인을 밝히는 것.”(120~121)

“나는 결정론이란 모든 사건에는 하나 또는 여러 가지의 원인들이 있고 그 하나 또는 여러 가지의 원인들이 달라질 것이 없었다면, 그 사건은 다른 식으로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신념 - 이에 관해서는 논쟁이 없기를 바라면서 - 이라고 정의할 것이다. 결정론은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행위의 문제이다. 원인도 없이 행동하며 따라서 그 행동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인간이란 … 사회의 밖에 존재하는 개인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추상이다. ‘인간사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포퍼 교수의 주장은 의미가 없거나 거짓이다. 일상생활에서는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으며 믿을 수도 없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는 자명한 명제는 우리 주변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우리의 능력의 한 조건이다. 카프카 소설의 몽환적인 성격은 그 어떤 사건도 무엇인가 명백한 원인 혹은 확인될 수 있는 원인이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인격을 완전히 분열시키게 되는데, 왜냐하면 인격이란 사건에는 원인이 있다는 전제, 그리고 그 원인들 중 많은 것은 확인 가능하므로 인간의 마음속에는 행동지침이 될만큼 과거와 현재의 패턴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전제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위가 원칙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원인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가정하지 않는다면 일상생활은 불가능할 것이다. 옛날에는 자연현상이 분명히 신의 의지의 지배를 받는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 현상의 원인을 탐구하는 것을 불경스럽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사야 벌린 경이 인간의 행동은 인간의 의지의 지배를 받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인간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를 설명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도 이와 동일한 사고방식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오늘날 사회과학의 발전수준이 이러한 부류의 논의가 자연과학을 퇴행시켰을 때의 그 자연과학의 발전수준과 똑같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129~130)

“결국 역사란 역사적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의 과정이다. 다시 한 번 탤컷 파슨스의 말을 빌리면, 역사는 실체에 대한 인식적 지향들의 ‘선택체계(selective system)’일 뿐만 아니라 인과적 지향들의 ‘선택체계’이다. 역사가는, 끝없는 사실의 바다에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중요한 것을, 오직 그런 것만을 추출해낸다. 그리고 역사적 중요성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은 그 전후관계를 자신의 합리적인 설명과 해석의 패턴에 합치시키는 역사가의 능력이다. 그 밖의 다른 인과적 전후관계들은 우연적인 것으로 배제되어야만 하는데, 그 이유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전후관계가 적절치 못하기 때문이다. … 클레오파트라의 코나 바야지드의 관절통이나 알렉산드로스가 원숭이에게 물린 것이나 레닌의 죽음이나 로빈슨의 흡연 등이 이러저러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군들이 전투에서 패배하는 것은 아름다운 여왕들에게 홀렸기 때문이라든가, 왕들이 애완원숭이들을 키우기 때문에 전쟁이 발발한다든가,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길을 건너다가 죽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일반적인 명제로서는 성립되지 않는다.”(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