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시 개천에서 용이 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북세미나의 요지처럼, 용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餘罪를 추궁하는] 검사와 스폰서’의 부적절한 친화력에서 알 수 있듯, 용이 된다는 것은 위계를 좇아 사적 선을 추구하는 것이요,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경계를 넓혀 공적 선을 지향하는 것이다.

*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탄할 일은 아니다. … 사실 미꾸라지들이 용꿈을 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좋은 세상 아닌가. 출세가 인생의 목표인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결코 살기 좋은 사회가 아니다. … 홀로 용이 되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개천을 떠나는 용이 아니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개천을 아름다운 곳으로 만드는 미꾸라지들이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_ 현병호(2010). ‘용꿈에서 해방되기’, <교육 통념 깨기>, 1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