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시즘을 기본적으로 보나파르티즘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브뤼메르 18일>에서 묘사된 것 같은 동적 과정으로서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불모의 정의를 쌓아가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엥겔스는 보나파르티즘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근대사회에서 발생하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대립에서 힘의 균형상태가 생기고, 양자 모두가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데에 이르지 못하는 상태가 발생했을 때, 일시적으로 양자에 대해 일정한 자립성을 가진 국가권력이 성립한다. 보나파르티즘은 그렇게 해서 성립된 독재권 권력의 성격을 가리킨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보나파르티즘에 관해 <브뤼메르 18일>을 제대로 읽지 않고, 이 정의에 따라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저 계급적 균형이라면 절대주의 왕권도 봉건적 세력과 부르주아와의 균형으로 성립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단지 계급적인 대립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변한 것이라고 해서는 보나파르티즘의 특징을 이해할 수 없다. 절대주의 왕권과 그것을 타도한 후 형성된 부르주아 국가 안에서 성립한 보나파르티즘과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계급적 균형이 어떻게 달성되었는가 하는 과정에 있다. 말할 것도 없이 후자에서 그것은 보통 선거권에 의한 대의제, 그리고 정치적 당파들의 연합을 통해서 실현되었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파악하지 않으면, 보나파르티즘만이 아니라 그 후의 파시즘 같은 대항혁명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브뤼메르 18일>은 예를 들어 일본의 1930년대 파시즘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불가결한 텍스트이다. 대체로 파시즘론은 독일 혹은 이탈리아의 경험을 모델로 하고 있는데, 그것들이 일본의 경우에 반드시 타당한 것은 아니다. 그 결과 일본에는 파시즘은 없었다는 등의 어리석은 주장조차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 정도다. 그러나 1930년대 선진자본주의 여러 국가에서 생겨난 사태를 파시즘이라는 개념만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이 사태는 우선 러시아 혁명에 대한 대항혁명이다. 즉 그것 자체가 어느 정도 사회주의적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대항혁명 운동은 30년대 대불황에 의해 박차가 가해졌다. 예를 들어 1930년대 아메리카합중국에서는 모든 당파나 계급을 전부 대표하여 전쟁정책을 추진한 대통령(루즈벨트)이 출현했다.” 그렇다면 파시즘을 무엇이라 규정해야 하는가. 그것은 ‘보수 체제의 위기에 따른 좌파의 약진 속에 반동적으로 대두되는 우파 혁명의 리더십’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