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의 예는 성경뿐만 아니라 교회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와 칼빈주의 설교가인 찰스 스펄전이 그 대표적인 인물로서 특히 스펄전은 … 설교와 저작들을 통해 자신의 우울증에 관련된 경험과 대처방법들을 기술함으로써 목회자들을 포함한 많은 기독교인들을 영적으로 감화시키고 있다.
스펄전이 겪은 고난은 주로 목회, 가족 그리고 질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목회와 저작을 통하여 열정적인 사역을 했으나 그의 설교와 성경 중심의 신학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던 목회자들이 존재했으며 영국의 유력한 신문들에 의해 비판을 당하기도 하였다. 특히 스펄전이 자신이 발행하던 월간지 ‘The Sword and Trowel’를 통해 목회자들의 비성경적인 신학을 지적한 것에 대해 다른 목회자들이 그의 자격과 신학적 입장을 비판하고 나서기도 했다. 결국에 이 사건은 그가 속한 ‘침례교 연맹(Baptist Union)’으로부터 징계를 받기도 했는데, 이 사건은 스펄전의 사역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 외에도 그에게는 아내 수잔나(Susannah)의 질병을 통한 어려움이 있었다. 스펄전은 서레이가든에서 있었던 참사가 일어나던 해에 수잔나와 결혼했다. 그녀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지만 건강상태가 좋지 못했던 그녀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스펄전의 사역기간 중 무려 27년 동안 예배에 거의 참석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병약한 아내의 몸은 스펄전에게 큰 부담 중 하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통풍, 관절염, 신장염과 같은 자기 자신의 신체적 질병들이었다. 그는 35세에 처음으로 통풍을 경험한 후,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메트로폴리탄 태버내클 교회(Metropolitan Tabernacle)에서의 22년 사역기간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설교를 할 수가 없었다. 극심한 신체적 질병은 사역의 후반기에 노약한 그를 더욱 지치게 했고, 결국 프랑스 멘톤(Menton)에서 57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그는 1년에 두세 달씩 강단을 비워야 할 정도로 중증의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1866년 스펄전은 설교 도중 회중을 향해 “저는 아주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 어느 누구도 이런 극도의 비참한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라며 우울증으로 인한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우울증의 직접적인 원인으로서 서레이가든 음악당(Surrey Garden Music Hall)의 비극을 언급하였다. 1856년 10월 19일 새로 건축된 서레이가든 음악당을 빌린 예배장소에서 일어난 비극은 그로 하여금 우울증을 경험하게 했고 우울증의 증상은 지속되었다. 새 예배당에 약관 22세의 비국교도 목사인 스펄전의 설교를 듣기 위해 약 1만 2천명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불이야!”라고 외치는 함성이 터져나오고 급속도로 혼란에 빠진 군중이 몰려나가다가 7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불길은 아무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계획적으로 방해하는 무리들에 의해서 첫 번째 집회는 실패하게 되었다. 스펄전은 이 비극적인 사고로 인해 일생에 가장 큰 충격과 좌절을 당했다. 밤낮으로 깊은 슬픔에 잠겼으며 한동안 악몽을 경험하였다. 이 사건 이후 평생 동안 우울증의 고통 속에 살았던 그는 건강상의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다. 스펄전의 서레이 음악당의 사건에 대한 감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저는 서레이 음악당(Surrey Music Hall)의 그 처참한 사건 이후 극심한 어둠의 공포를 겪었습니다. 그러한 일이 목회자에게 일어나기도 합니다. 저는 당시 엄청난 압박을 받았고, 그 처참한 불행의 무게 때문에 한없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사건이 있은 지 2년 후인 1858년, 당시 24세였던 그는 “나의 정신이 심각하게 침몰하여서 어린아이와 같이 수 시간을 울었지만 무엇을 위해서 우는지를 몰랐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스펄전은 자신이 겪고 있는 우울증의 고통을 묘사할 때 이유를 알 수 없는 형체가 없는 것과 씨름하는 모습을 사용하곤 했다.
스펄전은 그가 경험하는 우울증의 잠재적 파괴성에 대해서는 우울증은 영혼의 힘을 한 방울씩 소진시켜 사람을 낙심케 만들고 결국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을 지적하였다. 특히 우울증의 어두운 면과 고통에 대해서 말할 때는 우울증과 투쟁했던 루터의 “고통은 내 도서관의 최고의 책이다(affliction is the best book in my library)”라는 말을 종종 인용하였다. 이에 대해 그는 더 나아가 “그 고통의 책 중의 최고의 페이지는 가장 어둡고 우리의 영혼이 침몰할 때를 기록한 그 페이지인데 그 이름은 우울증이라는 페이지이다”라고 하였다.
스펄전의 우울증에 관한 기술들은 그의 저서 『목회자 후보생들에게』의 ‘제11장 목사의 침체 상태’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 부분에서 연약함에 기인한 슬픔과 침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아무리 탁월하게 쓰임받는 목사들이더라도 대부분이 -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 모든 것이 망가져버리는 무서운 침체의 시기를 경험한다는 사실은 구태여 그들의 전기에 나타나는 사실들을 언급하면서까지 입증할 필요가 없습니다. 루터의 생애만 보아도 그런 경우가 수없이 나타납니다. … 그는 환희의 칠층 천까지 올라가 있는 때도 많았고, 절망의 나락에 떨어질 때도 많았습니다. … 무엇보다도 그들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므로, 연약함이 있고, 슬픔을 당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사역에 놀라운 축복을 준비하실 때마다 먼저 우울증이 다가왔습니다. 우울증은 나에게 있어 거친 옷을 입은 예언자와 같습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고 중에도 그런 괴로움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활을 계속해서 당겨놓으면 언제 부러질지 모르는 법입니다. 육체에 잠이 필요하듯이 정신에도 쉼이 필요합니다. … 휴식의 시간은 결코 낭비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선한 힘을 모아주며 결국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로 불꽃을 계속 유지하십시오. 그 옛날 요한과 마리아처럼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절대로 마음이 차가워지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마음을 불타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현대 기독교 상담이 형제 자매의 관계에서나 교회 공동체에서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한 채 스펄전이 지적한 인간관계와 신앙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에만 머물러있는 답보상태는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