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경향의 정점은 17세기 프랑스의 종합병원으로 대변되는 대감금이었다. 1610년대에 파리에서는 빈민에 대한 가혹한 체포와 구금이 이루어졌다. 그 이데올로기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깨끗하고 행복하고 종교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 - 만일 개인이 그렇지 못하면 교회나 국가가 강제로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요 과제 중의 하나는 ‘사회의 위험 요소’를 제거한다는 것인데, 사회의 주류에 끼지 못한 사람들, 즉 빈민과 주변인들이 그 중요한 대상이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부자들에게 봉사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중 많은 사람이 젊은 시절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악에 물들어 구걸하고 방랑하며 보낸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교육의 방식은 인간성에 대한 철저한 억압이었다. 이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모두 회색 옷을 입고 번호로만 불려지며, 자신의 할 일과 종교적 의무들을 강제당하고 걸핏하면 온갖 악행을 당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사실 이런 기관에서는 수용자들을 이용해서 얻는 이익보다 비용이 더 컸지만 그래도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이런 곳을 계속 운영하였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감금은 단지 경제적인 고려 이상으로 국가가 빈민 계급에 대해 억압적인 정책을 취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현상에서 근대 사회 발전의 성격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자비로운 의도와 억압 체제의 잔인성을 기묘하게 결합시킨 채 노동의 윤리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 어떠한 것이 가치가 되는 것은 그것을 사회가 인정하고 동의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주경철, 1999). 이러한 시각에서 이스턴(Easton)은 정치를 “한 사회의 가치들을 권위적으로 배분(the 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s for a society)”하는 것으로 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