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민주주의는 대략 두가지 차원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전자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민주화’ 문제고, 후자는 ‘자본주의’ 문제다. 한국 사회는 87년을 기점으로 전자가 진전되어 왔지만 97년을 기점으로 후자의 문제가 오히려 악화되어 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늘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자살하는 한국인들이 ‘못살겠는’ 이유로 꼽는 문제들은 대개 후자와 관련되어 있다. 빈부격차, 부의 세습과 신분사회화(갑질), 비정규 불안정 노동, 청년 실업, 경쟁교육, 물신주의 등등. 그에 반해 한국의 진보 시민들이 가장 긴급하고 진지하게 분노하고 행동하는 사회 문제들은 대개 전자에 집중된다. 이 희한한 상황이 오늘 한국 사회가 옴짝달싹 못하는(외신에서 ‘한국사회는 몇백만명이 광장에 모이는데 왜 달라지지 않을까’ 질문하는) 주요한 이유다. 물론 이런 상황은 인민들이 후자의 문제를 덮고 전자의 문제에 집중하면 할수록 제 기득권과 헤게모니가 강화하는 자유주의 세력의 작품이다. 그런데 과연 진보적 시민들은 자유주의 세력의 음모에 속아 넘어간 건가? 지난 20여년 동안 나를 포함한 좌파들은 그런 전제의 논의를 이어왔다. 이른바 ‘가짜 진보’ 논의들이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렇다면 사실관계를 다시 봐야 한다는 뜻이다.

_ 아담 쉐보르스키를 읽어야 할 시간이라고, 김규항의 글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