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와 인상주의 화가들: 불멸은 어떻게 획득되는가. 물가 풀밭에 의복을 갖춰 입은 남자 두 명이 비스듬히 앉아 있고, 그 사이에 벌거벗은 여자가 다리를 살짝 뻗고 있다. 그는 관객을 말끄러미 쳐다본다. 마네의 그림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 등장하는 벌거벗은 그가 바로 인상주의를 이끌어냈다. 처음 전시되었을 때에는 수많은 비난을 불러 일으켰지만 결국 이 그림은 19세기 후반의 반항들 중에서 불멸을 획득한 몇 안 되는 것들 중의 하나이다.
19세기는 공업화의 진전과 자본주의의 전면적 승리에 발맞춘 경제적 합리주의, 역사과학과 정밀과학의 발전 및 그것과 결부된 사유의 과학주의, 계속된 혁명의 실패와 그 결과 생겨난 정치적 현실주의 등의 요란한 술어로써 규정되곤 한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의 파리는 사라짐과 새로움 사이에서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물론 1850년을 경계선으로 삼아 날 선 대조들이 보이긴 한다. 그 전에는 앵그르와 다비드 같은 고전주의자들과 들라크루아 같은 색채주의자가 있었지만 그 후에는 쿠르베의 사실주의와 모네의 인상주의가 나왔다. 그 전에는 낭만주의 시인과 소설가가 있었지만 그 후에는 플로베르, 보들레르의 간결하며 예리하게 날이 선 산문과 시가 나왔다(데이비드 하비,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참조). 그러나 이들에게는 확신이 없었다. 자신들이 진리를 파악했다는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인상주의는 자기확신의 결여를 확신적으로 펼쳐 보이는 자기역설적 회화이다. 그들은 유기적 전체의 구조화를 이루어내지 못한다. 전체에 대한 환상조차 가지지 못한다.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관찰자의 감각기관에 수용되는 성질 뿐이다. 바닥 모를 내면의 응시를 통해 얻어지는 가볍고 일시적이라는 느낌,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떠돌아 다니기 등을, 현혹되지 않고, 소홀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고, 오직 보이는 것만을, 필연적인 것뿐만 아니라 우연적인 것도, 순간적인 것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것도, 모든 것을 단일한 시야 안에서 차별 없이 동등하게 포착한다. 이로써 원근법적 세계는 무너지고 모든 것이 중심이 되며 더 나아가 기존의 가치체계는 거침없이 밟힌다. 내면만 간직한 인간은 색채로 뒤덮인 평면에서 만족을 얻고, 이는 결국 (세잔의 회화가 보여주듯) 반이성주의 회화, 내면의 기하학주의로 귀결된다.
지금은 이렇게 그럴싸한 말들로써 인상주의를 치장하는 우리들이 과연 19세기에 그것을 마주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울퉁불퉁하던 세계가 돈 앞에 무너져 평탄하게 되어가던 세계에서,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 때문에 애국심이 파탄 나는 세계에서, ‘파리코뮌’이라 불리는 계급투쟁의 시가지 전투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유례없는 혹평을 견디면서 자신들의 그림을 고수했다. 분명 그들은 19세기라는 시대의 혼란함과 교감하고 있었고, 당대의 ‘높으신 분’들은 시대를 살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예술가는 정치적 권위도 후원자도 더 나아가 관객도 믿어서는 안 되는, 오로지 자신만을 믿어야 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믿었던 자들은 후대의 평가를 얻어 불멸을 획득하게 되었다.
우리는 시대를 앞서 살아가지 못한다. 예술가가 아닌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불멸에 가까이 갈 수 없다. 명예를 얻을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시대가, 도시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지, 그 심판을 지켜보는 것, 관조일 뿐이다.
_ <파리의 심판>, 감수의 글, 2008.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