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독, 완독, 통독 등 가지가지 독서법이 있으나 독서에 드는 비용의 경중에 따라 분류할 수도 있다. 가장 사치스런 독서법을 먼저 소개한다. 이른바 ‘현장독서법’이라 부를 수 있을 이 방법은 어지간한 살림살이의 독자들은 선뜻 실행에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돈이 많이 든다. 쉽게 말해 이 독서법은 특정한 책을 골라 그것에 어울릴 만한 장소(대체로 작품의 배경)에 가서 읽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으러 작품의 배경이 된 영국 요크셔로 가 바람 부는 언덕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것이다. 에베레스트 등반을 둘러싼 인간들의 탐욕과 그로 인한 좌절을 실감나게 묘사한 존 크라카우어의 걸작 논픽션, <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읽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눈 내리는 일본의 니가타현에서 읽으면 좋을 것이다. 이 독서법엔 때도 중요하다. 작품을 먼저 정하고 가야 할 곳과 시기를 정하는 것이니 세계의 계절과 기후 동향에도 민감해져야 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로마에서 읽고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베니스에서 읽으면 좋을 것이다. 이왕 그 아름다운 도시까지 가는데 여행 가방에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 죽다>도 끼워넣도록 하자.”(김영하, <랄랄라 하우스>, 2012) _ 맥락 부호화의 극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