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롤라모 사보나롤라. 도미니크회 수도원에 들어가 공부하고, 1491년 피렌체의 성마르코 수도원장이 되어, 교회 혁신을 위한 설교와 예언자적 언사로써 신도들을 지도하여, 시민의 정신적 지도자와 같은 지위에 올랐다. ‘하느님의 노여움’이라고 그가 예언한 1494년 프랑스 국왕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원정은,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신벌(神罰)로 받아들여졌으므로, 프랑스인들은 이와 결탁하여 민주정치와 신재정치(神裁政治)를 혼합한 헌법으로 피렌체를 통치하려고 하였다. 교회 내부개혁에는 많은 사람이 동조하였으나, 1497년의 사육제에서는 시민의 사치품과 이교도적 미술품 및 서적을 불태운 이른바 ‘허영의 소각’을 비롯한 과격한 방법을 취함으로써 크게 반감을 샀다. 프랑스군이 철수한 뒤, 반대 세력이 우세해지고 교황 알렉산드르 6세와의 불화, 프란체스코회와의 대립 등으로 지지 기반을 잃어 다른 2명의 도미니크회 성직자와 함께 화형에 처해졌다. 저서로 <십자가의 승리 Triumphus crucis, ‘Compendium revelationum’>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