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비참한 심정으로 남산 팔각정에 올랐다. 사흘하고도 두 끼를 더 굶은 뒤라 몸이 휘청거렸다. 서울시내가 내려다보였다. 저 많은 집들 중에 내가 쉴 곳은 단 한 군데도 없구나. ‘포기하자…’ 하고 험한 생각이 드는데 송충이에 갉아 먹히고 있는 작은 소나무가 눈에 띄었다. … 바로 그 시절이었다. 명동 쪽에서 연출하던 친구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끔 심금을 털어놓고 “좋은 연극 만들자”며 서로 위로해주고 다짐하던 친구였다. 소식을 전한 친구와 이태원동 아픈 친구의 집으로 병문안을 갔다. … 그 말끝에 친구가 웃으며 농담조로 “야, 지금 보신탕 한 그릇 먹으면 힘이 좀 나겠는데 말이야”라고 했으나 우리는 겸연쩍게 웃기만 했다. “그래, 빨리 건강을 되찾도록 해라. 그때 보신탕 놓고 소주 한잔하자”고만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그놈도 우리 이해해 줄 거야. 빈털터리라는 걸”이라며 스스로 변명했다. 며칠 후,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그 날 이후 한동안 밖에 나오지 못하고 ‘보신탕 한 그릇 사주지도 못한 못난 놈이 무슨 친구라 할 수 있는가!’라며 자책했다. _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 가지(전무송, 경향신문 2012/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