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비극은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디오니소스 축제의 일환으로 발전한 것이다. 3월 말 포도주와 도취의 신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축제가 열렸다. 제물을 바치고 국가 유공자를 칭송하고 전사자의 아들 중 성년에 도달한 청년들의 무장 행렬이 있었다. 그러나 가장 주요한 행사는 비극의 경연이었다. 하루에 한 작가의 비극 3편과 가벼운 소극(笑劇) 한 편을 상연했고 그것이 사흘 동안 계속되었다. 비극은 아크로폴리스 남쪽의 야외극장에서 상연되었다. 관객석의 수용 인원은 1만4000명을 웃돈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때는 무료로 상연되었고 한때는 입장료를 받았으며 심지어 관람객에게 상여금을 주는 시기도 있는 등 변화를 겪었다. 극장이 국가의 교육기관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해마다 새 작품만을 상연했고, 아테네의 쇠퇴를 초래한 근 30년에 걸친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에도 경연이 중단되는 법은 없었다. 그만큼 중요한 국가 행사였다. 경연인 만큼 심사원이 필요했다. 10개 부족이 각각 약간 명의 후보자 명단을 제출하면 그 명찰을 10개의 항아리 속에 밀폐해 아크로폴리스에 보관한다. 경연이 시작되면 그 항아리를 극장으로 운반하고 비극 상연을 감독하는 집정관이 그 10개의 항아리에서 명찰 하나씩을 무작위로 끄집어낸다. 이렇게 선발된 10명의 심사원이 경연에 참가한 이들 가운데서 우수작가를 투표한다. 그러면 집정관은 다시 이 가운데 아무렇게나 5표를 골라 우수작가를 선정한다. 나머지 5표는 사표(死票)가 된다. 절반 개표로 최다 득표자를 가려 우승자를 결정하는 것은 확실히 우리에겐 낯선 관행이다. … 10표를 모두 개표할 경우 6명만 매수하면 우승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5표를 개표할 경우 8명을 매수해야 하니 그만큼 부정행위는 어려워진다. 또 10표를 모두 개표하면 누가 누구를 찍었는지 관계자가 알 수도 있다. … 절반 개표에 의한 판정은 선정의 우연성을 부각시킨다. 또 판정의 오류 가능성과 자의성을 돋보이게 한다. 10표 전체의 개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승자는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며 과도한 오만이나 자만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패자들 역시 과도한 열패감이나 자괴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패자에게는 위로를 안겨주고 승자에게는 겸손의 필요를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