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말하는 방식으로 더 말하는 시. 안미옥의 시에는 삼켜진, 쟁여진, 그리하여 심연으로 내려가는 굴을 파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층 한층 탑을 쌓아올리는 그런 말, 들끓는 침묵의 언어가 함께한다. 그녀의 “침묵은 검고, 낮고 깊은 목소리”, “심해의 끝까지 가닿은 문 같다”. 그 문을 “아직 두드리는 사람”의 언어가 안미옥의 시다. 언어에 표정이 있다면 안미옥의 언어는 “숨을 참는 얼굴”. 그리하여 안미옥의 첫 시집을 읽는 우리는 이제 “볼 수 없던 것을 보려고 할 때”의, 들리지 않던 것을 들으려 할 때의 그 얼굴이다. 작고 부드럽고 연한 마음, 그 마음의 언어는, 그 언어의 피부는 고통과 슬픔에 더 힘껏 약해지고자 한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맨살 같은 언어로 맞이하는 시적 환대의 어떤 자세를 안미옥의 첫 시집은 이룩한다. 그녀의 시집을 읽는 내내 나를 떠나지 않았던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푸른 새벽빛 속에 기도하는 자세를 이룬 검은 실루엣. 그것은 단정하고 간절하고 환하고 슬펐다. 그 검은 실루엣으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이 당신을 향해 바야흐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