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영혼은 시를 통해서 무덤 너머에 있는 모든 찬란한 것들을 엿볼 수 있다고 보들레르는 말했다. … 보들레르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죽음 뒤에 얻게 될 휴식처를 상상했고, 동반 자살한 연인들이 죽음 뒤에 이루게 될 완전한 사랑을 꿈꾸기도 했다. 죽음 속에서만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적은 없다. 이 세상에서 그 빛을 볼 수는 없지만, 죽는 날까지 내내 시를 씀으로써 저 빛 속의 삶과 가능한 한 가장 가까운 삶을 이 땅의 우여곡절 안에서 실천하려고 했다. 이 열정은 현대시의 윤리가 되었다.

보들레르의 열정을 이어받은 현대의 시인들은 ‘무덤 뒤의 찬란함’에 자주 도취하면서도, 현실에서는 그 빛을 일상적 실천의 등대로 삼는다. 언제나 물질의 제약을 받는 이 세상에 그 찬란한 빛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도달할 수 없는 곳을 향해 가는 발걸음은 바로 그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결코 멈추어지지 않는다. 시인들에게는 다른 세계의 빛이 이 세계의 실천을 지시한다. 저 불행한 청년은 이 실천이 두렵고 세상의 온갖 장애가 두려워, 이 세상을 파괴하고 저를 파괴하였으며, 마침내 저 찬란한 빛을 꺼버림으로써 자신이 가고 싶어 했던 죽음 뒤의 세계마저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가 어떤 글을 써서 어떻게 자신을 과시하건 그는 패배한 사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