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진의 발명으로 인상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말은 이 시대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한 도식적인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이 모든 것을 무감각한 피사체로 담아내듯이 인상주의 예술가들도 외부 세계를 그렇게 드러낸다. 그러나 인상주의는 사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드러낸다. 그래서 인상주의의 세계 속에서 모든 것은 한 순간도 정지해있는 법이 없으며, 원근법적 세계가 무너지고 중심에서 이탈하여 모든 것들이 중심이 되며 기존 가치의 체계가 사라진다. 평면 속에서 깊이를 드러내고자 할 때 사용되던 단축법이나 명암법과 같은 환영주의는 인상주의에 와서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도리어 모든 것이 색채로만 뒤덮인 평면이 되어 버린다.”

2. “인상주의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계를 정지해 있는 평면으로 옮기고자 하는 모험을 감행했고 그 모험의 결과, 구석기 시대 이후 최초의 반지성주의 예술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모네에게 눈이 보이는 대로 그린다는 것은 우리의 망막에 비친 영상을 옮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지성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하게 감각만으로 인식된 세계를 캔버스에 옮기려고 노력하였으며, 그의 양식은 빛을 머금은 색채로만 구성된, 이전에는 본 적 없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 양식이 되었다.” 

3. 근대의 “한편에서는 거대한 합리성의 성이 구축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은 자아를 상실한다. 보들레르가 ‘현대성은 지나가는 것, 일시적인 것, 우연적인 것으로서 이것이 예술의 절반이며, 또 다른 예술의 절반은 바로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이라 했을 때, 이는 19세기의 현실과 그에 상응하는 인상주의 예술의 성격을 집약하고 있는 셈이다. 모든 것이 변하고 정지해 있는 것이 없다고 했을 때, 외부 세계의 모든 것들이 동등하게 평면화되었을 때, 인간 중심의 세계가 무너져 ‘반인간주의’가 되고 이성으로 파악하려는 태도가 그 힘을 잃고 ‘반이성주의’가 시작하게 된다. 그러니까 20세기를 풍미하게 되는 반원근법적 사유들은 인상주의 시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셈이다.”

4. “세잔은 자신만의 원근법을 만들어 낸다. 즉 모든 것이 변하고 탈가치화될 때 그것을 포착하고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며 자신의 내면만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내면의 기하학주의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이 시대에 연작이 본격적으로 그려지게 된 것 역시 순간의 진리 포착과 무관하지 않다.” “현대 미술이 급격하게 추상 미술이 되어간 까닭은 여기에 있다. 늘 변하는 어떤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현대의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변하지 않는 어떤 규칙이 필요했고, 그 규칙을 외부의 세계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끄집어 올렸다. 그래서 현대의 고전적 양식은 이전의 고전적 양식과는 다른 의미의 고전적 양식이 된다. 그리고 세잔은 현대 고전적 양식의 선두이다.”

* “울퉁불퉁하던 세계가 돈 앞에 무너져 평탄하게 되어가던 세계에서,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 때문에 애국심이 파탄나는 세계에서, ‘파리코뮌’이라 불리는 계급투쟁의 시가지 전투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유례없는 혹평을 견디면서 자신들의 그림을 고수했다. 분명 그들은 19세기라는 시대의 혼란함과 교감하고 있었고, 당대의 ‘높으신 분’들은 시대를 살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예술가는 정치적 권위도 후원자도 더 나아가 관객도 믿어서는 안되는, 오로지 자신만을 믿어야 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믿었던 자들은 후대의 평가를 얻어 불멸을 획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