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무리의 대학 신입생들이 시험지가 놓인 책상 앞에 앉는다. 이들은 미국 스탠퍼드대, 프린스턴대, 영국 케임브리지대 등 해외 유명 대학에 합격한 한국 학생들. 이들 앞에 놓인 것은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지다. 과연 세계 최고 명문대 합격생들의 수능 점수는 몇 점일까. 결과는? 전멸이었다. 단 한 명의 학생도 1등급을 받지 못했다. 놀라운 것은 공대 합격생들조차 수학과 과학탐구 점수가 엉망이었다는 점이다. ‘반타작’ 수준인 학생도 있었다.

2. 한 학생은 “외국에선 시험 때 공학용 계산기를 활용해 수학적 사고를 하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 안에 일일이 빠르게 실수 없이 계산하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수학뿐 아니라 과학에도 왜 이렇게 암기나 계산 문제가 많으냐”며 “한국과 외국의 과학교육이 추구하는 목표가 전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이 해외에서 경험한 과학 입시문제는 ‘두 개의 다른 종의 생물이 만났을 때 진화하는 과정을 추론해보라’ 등 ‘진짜 과학자’ 같은 생각이었던 반면에 수능에서는 주기율표를 외우고 분자량을 계산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해 보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학생은 “외국에서의 입시가 ‘내가 아는 지식과 생각을 쓰는’ 것이라면 수능은 ‘모르는 걸 계속 읽고 맞히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3. 한 방송사의 교육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해외 명문대에 합격한 한국 학생들의 수능 테스트 사례를 소개한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장은 “이래도 수능이 가장 타당하고 뛰어난 인재 선발 시스템이냐”고 말했다. … 그는 “시험에 나오는 문제가 바뀌지 않으면 교사도, 학생도 다른 방식으로 가르치거나 공부할 수 없다”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발생 연도를 묻는 한국의 시험과 ‘전쟁 후의 평화합의가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킨다는 의견에 대한 생각’을 묻는 교육 선진국의 시험 중 무엇이 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인재를 낳겠느냐”고 반문했다. 최근 일각에서 수능에 일부 서술형을 도입할 것 등을 제안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아이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정답을 외워야 하는 평가와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평가는 전혀 다른 것인데 이를 섞는 것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얘기다. 또 수능과 EBS 출제 연계는 고교 교실을 ‘문제집 암기장’으로 만든 최악의 정책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