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4년 이후 1789년까지 개최되지 않았던 삼부회. 당시 프랑스 왕가는 연간 세수입 절반이 국채 상환과 이자 비용으로 소진되는 상태에서, 미합중국 독립전쟁을 지원하여 재정이 급격히 악화되어 결국 국가경제 파산에 이르게 되었다. 루이 16세는 면세 특권을 누리던 귀족과 성직자 과세안을 제시하였으나 반발에 부딪히고, 1789년 소집한 최후의 삼부회는 봉건적 특권의 축소와 폐지를 요구하는 제3신분과 귀족, 성직자의 대립에 의해 붕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