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시에예스는 프랑스 절대왕정의 구체제(앙시앵 레짐)가 무너진 1789년부터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테르미도르 쿠데타로 막을 내린 1794년까지 프랑스 대혁명의 전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다. 그는 가톨릭 예수회 성직자이자 뛰어난 법학자였다. 제헌의회 헌법과 프랑스 인권선언이 그의 손에서 정초됐다. 최초로 사회학(sociologie)이란 용어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시에예스는 혁명이 있기 몇 달 전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치 팸플릿을 출간했다. 명쾌한 논리와 선동적 어투로 무장한 책은 혁명의 기운을 타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당시 프랑스는 인구 2,500만명의 2%도 안 되는 제1신분(성직자)과 제2신분(귀족)이 명예와 특권과 부를 독점한 세습제 신분 사회였다. 제3신분(평민)은 특권 신분이 꺼리는 힘들고 고된 역무를 담당했다. 군주는 신분을 초월한 존재였다.

시에예스는 모두 6개 장으로 짜인 책의 절반을 제3신분에 국민 주권을 부여하는 데 할애했다. 이때 국민은 “동일한 입법부에 의해 대표되며, 공통의 법률 아래 살아가는 구성원 집단”이다. 시에예스는 제3신분을 “구속되고 억압된 전체이되, 특권적 신분이 없으면 자유롭고 번성하는 전체”로 규정했다. 제3신분이 완벽한 하나의 국민임에도, 그때까지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그 무엇이 되는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